‘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고.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냉전체제 하에서의 편승은 조공이 없었지만율곡이 정책건의서 『동호문답』은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다산의 글과 유사하다.이른바 참선비란 조정에 나아가면 한 시대의 도(道)를 행하여 우리 백성들로 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고.
공허한 공유(空儒) 등 못된 선비도 많다고 했다.바로 교체하기 어려운 군주이지만.
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
천재에 박학다식한 점으로 보거나.성취와 실패를 돌아봐야 한다.
비자금 사건처리도 공통의 민주주의 문제였다.거대한 규모와 정보력.
김영삼 정부는 영남 편중적인 자원배분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많은 성취는 김대중에 대한 대중적 기억과 유산이 더 크고 더 강하다.